"헛소리 집어치워라!"
바닥에 처박힌 하인츠의 목덜미에서 끓어오르는 욕설이 터져 나왔다. 어깨의 룬 핵이 완전히 부스러져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하면서, 노인의 두 눈은 피발을 세운 채 로간을 짓씹을 듯 노려보았다.
"내가 속았다고? 감히 일개 낙제생 따위가 바티카와 나의 계약을 논해? 그딴 조악한 속임수에 넘어갈 성싶으냐!"
"속임수가 아닙니다, 처장님."
로간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흑요석 좌대 위에 놓인 예언서의 첫 장을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신성어의 문맥은 거짓말을 못 합니다. 제1장이 시작되는 본문과 양피지 제본선 사이의 간격, 그리고 이 절단면의 산화 정도를 보십시오."
차갑게 식은 푸른 불빛 아래서, 잘려 나간 열두 장의 공백이 흉터처럼 선명하게 드러났다. 종이의 절단면은 칼로 도려낸 듯 매끄러웠으나, 종이 표면의 섬유질은 이미 바스러질 정도로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어제오늘 일어난 파괴가 아니었다. 족히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봉인실의 건조한 공기를 쐬며 삭아 내린 흔적이었다.
그때, 보관소 문틀 뒤에 얼어붙어 있던 말콤이 별안간 감식봉을 쥐고 앞으로 성큼 걸어 나왔다.
"비켜 봐! 비켜 서란 말이다!"
말콤의 핼쑥한 뺨이 경련했다. 그는 펠릭스의 어깨를 거칠게 밀치며 좌대 앞으로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