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외벽의 냉각 배관에서 뿜어져 나온 고열의 수증기가 류진의 시야를 가렸다. 크로노스 시티 제4 하층 구역은 상층부의 화려한 홀로그램 광고탑에서 밀려난 전자 폐기물과 폐수가 흘러드는 통로였다. 머리 위를 지나가는 고가 철로에서 저주파 진동이 울릴 때마다 녹슨 철망이 잘게 떨렸다.
류진은 코트 안쪽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보폭을 넓혔다. 안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모서리가 닳은 금속 덩어리의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5년 전 아버지가 연구실 책상 서랍 밑바닥에 남겨 두었던 구형 기억 장치였다.
디지털 글라스 오른쪽 상단 인터페이스에 붉은색 점멸 신호가 간헐적으로 튀었다. 크로노스 기업 중앙 관리 시스템의 광역 추적 센서가 하층 구역 환기 터널 근처까지 신호를 뻗치고 있었다. 작업실에서 추출해 낸 의뢰인의 데이터 조각은 이미 글라스 내부의 독립 플래시 메모리에 격리해 둔 상태였다. 하지만 한 번 활성화된 보안 프로토콜은 통신망에 남아 있는 미세한 패킷 잔류 흔적을 끈질기게 훑고 있었다.
류진은 축축한 이끼와 기름때가 눌어붙은 계단을 단숨에 뛰어내려 갔다. 막다른 골목 끝, 빛바랜 네온관 하나가 반쯤 깨진 채 찌직거리는 잡음을 내뿜는 수리소 간판 아래 멈춰 섰다.
에코의 작업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