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아카이브 챔버의 곡면 디스플레이 전체가 검붉은 빛으로 일그러졌다. 레미나 프라임의 희박한 대기를 찢으며 강하하는 크로노스호의 윤곽이 센서 그리드를 가득 메웠다. 47년 전 실종되었던 자매함은 기록 보존선의 유려한 곡선을 잃어버린 채, 표면 전체가 기괴하게 증식한 결정체로 뒤덮여 있었다. 그 결정체들은 마치 별빛을 빨아들이는 암흑 물질처럼 주변의 광학 신호를 왜곡시키고 있었다.
진동이 발밑의 합금 바닥판을 타고 올라왔다. 액체 헬륨 수조 속에서 부유하던 주 아카이브 코어가 불규칙한 주파수를 내뿜으며 흔들렸고, 냉각 파이프 밸브에서 새어 나온 백색 증기가 챔버 바닥으로 깔렸다.
"기억선이 우주를 지우는 도구였다니 말도 안 돼. 제타, 즉시 실드 전개하고 링형 추진 모듈을 예열해. 저 침식체를 떨쳐내야 해."
엘리시아는 중앙 콘솔로 다가가 수동 차단 레버를 젖혔다. 손끝에 닿는 기계식 스위치의 차가운 감촉이 신경을 팽팽하게 당겼다. 길드의 기록관들이 목숨을 바쳐 지키려 했던 기억선이 실은 대정적이라는 거대한 소멸 작업을 수행하는 집행체였다는 사실은, 그녀가 평생을 바쳐온 존재 이유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충격을 곱씹을 여유는 없었다. 상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크로노스호의 압도적인 질량이 이미 아르카의 상층 편향장을 짓누르고 있었다.
"전방 편향 자기장 출력 92퍼센트까지 전개. 링형 추진 모듈의 아음속 노즐 예열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