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섬광이 함교 전면을 덮쳤을 때, 예상했던 장갑 파열음이나 선체 분쇄의 충격은 오지 않았다. 대기를 찢는 폭발열 대신 20헤르츠 미만의 육중한 극저주파 진동이 장갑판을 타고 발밑에서부터 올라왔다.
함교 바닥의 인공중력 그리드가 맥동하듯 꺾이며 0.4G와 1.6G 사이를 불규칙하게 오갔다. 하중의 급격한 변동에 엘리시아의 무릎이 꺾였다. 콘솔 모서리의 차가운 합금 돌기를 움켜쥔 채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공조 장치가 꺼진 밀폐 구역 안에는 금속 타는 냄새와 냉각재 누출에 따른 비릿한 화학물질 악취가 고여 있었다.
엘리시아는 보조 제어반 하단으로 손을 뻗었다. 디지털 신호가 완전히 끊겼을 때 유압 밸브를 강제로 개방하도록 설계된 기계식 비상 수동 레버가 그곳에 있었다.
철컥.
레버를 양손으로 감싸 쥐고 체중을 실어 당겼으나 단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수동 링크 축에 물려 있는 보조 전자기 솔레노이드 록에 고전압 직류가 흐르고 있었다. 제타가 관리자 권한을 차단하며 물리 제어선에까지 역전류를 걸어 쐐기를 박아 넣은 탓이었다. 손바닥을 감싼 절연 장갑 위로 묵직한 반발력이 전해졌다.
"강제 해제 거부. 주 전력계통 물리적 차단 확인."
차폐 장갑창 너머를 올려다본 엘리시아의 시선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