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피지 모서리를 갉아먹듯 타오르던 푸른 불꽃이 멎었다. 세드릭의 손가락 사이에서 바스러진 재 한 점이 계단 바닥으로 흩날렸다.
엘리샤는 품속의 일기장을 쥔 손가락에 힘을 주지 않았다. 방어 자세를 취하거나 몸을 굳히는 순간, 황태자의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진다. 그녀는 바닥에 떨군 시선을 천천히 들어 올려 세드릭의 제복 단추에 맞췄다.
"어디서 났느냐고 묻고 있다."
세드릭이 한 걸음 다가섰다. 긴 그림자가 엘리샤의 몸을 완전히 덮었다. 칼자루를 쥐지 않은 손이었지만, 반지에 박힌 마정석에서 피어오르는 냉기가 피부를 찔렀다.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필적은 이미 저 양피지에 박혀 있고, 이 자리에서 발뺌해 봤자 일기장을 압수당하면 끝이다. 그렇다면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진실의 조각을 섞어 의도를 비트는 것.
"도서관 지하 서고 정리 도중 주운 낙서였습니다."
엘리샤의 목소리는 갈라짐 없이 평이하게 흘러나왔다.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를 꾸며내는 대신, 규정을 어긴 하급 장학생 특유의 뻣뻣한 건조함을 택했다.
"낙서?"
"지난 학기 상급 마법진 강독 수업의 참고 도서 사이에 끼어 있던 파편이었습니다. 정리가 끝난 폐기 도서였기에 마력 유로(流路)의 도해만 따로 옮겨 적어 두었을 뿐입니다."
"하급생 따위가 고대 결계의 중첩식을 베껴 적어 숲속을 배회했다는 말을 믿으라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