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붉은 연기 사이로 떠오른 덩굴과 방패의 문양은 수정구의 투명한 표면을 차갑게 물들이고 있었다.
서고 안의 공기가 삽시간에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일그러졌다. 카엘의 허리춤에서 푸른빛 오러가 칼날을 따라 번쩍였다. 그의 발걸음이 돌바닥을 무겁게 울리며 문가를 향했다.
"지금 즉시 수도에 주둔 중인 북부 기사단을 움직이겠습니다."
카엘의 목소리는 얼어붙은 호수 밑바닥처럼 가라앉아 있었으나, 그 안에 담긴 살기는 숨겨지지 않았다.
"바르샤트 후작가가 어둠의 무리와 결탁해 왕궁 결계를 건드렸다면 이는 명백한 대역죄입니다. 날이 밝아 방위군이 교대하기 전에 후작 저택을 포위하고 놈의 목을 베어 배후를 캐내겠습니다."
"멈추세요, 카엘."
엘리시아의 단호한 목소리가 서고의 벽을 때렸다.
카엘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는 그의 서늘한 푸른 눈동자에는 주군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과 배신자를 향한 살의가 뒤섞여 일렁이고 있었다.
엘리시아는 피멍이 든 손바닥을 천천히 쥐었다 펴며 카엘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검을 거두세요. 감정에 휘둘려 칼을 뽑을 때가 아닙니다."
"공녀님, 놈은 결계의 핵을 흔들어 공녀님의 목숨을 앗아가려 했습니다. 시간을 주면 증거를 인멸하고 수도 방위군을 동원해 학회 전체를 봉쇄할 겁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안 됩니다."
엘리시아는 카엘에게 다가섰다.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차분했다.